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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슬픈 인연,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슬픈 인연,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호동의 어머니는 갈사국왕의 손녀로 대무신왕의 두 번째 부인이었다. 호동왕자는
얼굴이 빼어나게 잘 생기고 총명하여 주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32년 4월, 호동은 옥저에 놀러갔다가 낙랑왕 최리를 만났다. 최리는 호동왕자를
보는 순간 아주 마음에 들었다.
  "괜찮다면 우리 궁에 들렀다 가지 않겠소?"
  호동왕자는 최리를 따라갔다. 최리에겐 어여쁜 딸이 하나 있었다.
  "나의 딸이오. 왕자를 보는 순간 사위를 삼고 싶어 이리로 데려온 거요."
  호동왕자도 낙랑공주가 마음에 들었다. 호동왕자가 최리의 궁에 머무는 동안 둘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호동왕자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 했다.
  "고국에 돌아가 아버님의 허락을 받아서 오겠소."
  호동왕자는 고구려로 돌아갔다. 아버지 대무신왕은 낙랑공주를 아내로 맞는 것을
선뜻 허락하지 않았다.
  "결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낙랑의 한인들을 모두 정복하여 우리의 영토를 되찾는 일이다."
  "그 뜻을 소자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아무 염려 마옵소서."
  대무신왕은 호동왕자의 다짐을 들은 후 비로소 결혼을 허락했다. 대무신왕이 그
결혼을 허락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낙랑에는 적병이 침입해 오면 스스로 울어 위기를 알리는 북과 뿔피리가
있었다. 그것이 있는 한 고구려는 쳐들어가도 소용이 없었다. 낙랑공주가 완전히
호동왕자와 가까워진 뒤에 낙랑의 북과 뿔피리를 없애게 하려는 것이었다.
  간신히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낸 호동왕자는 낙랑공주와 결혼해 고구려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 행복 뒤에서 낙랑을 정복하려는 대무신왕의 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어느 날 대무신왕은 호동을 불렀다.
  "낙랑에 북과 뿔피리가 있는 한 낙랑을 쳐들어가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너도
알겠지. 낙랑공주로 하여금 북과 뿔피리를 파괴하도록 하여라."
  호동왕자는 공주에게 말했다. 공주는 슬픈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낙랑공주는 낙랑으로 갔다. 최리는 오랜만에 오는 딸을 아주 반갑게 맞아들였다.
  그러면서 고구려의 속사정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버지가 나를 고구려 왕자에게 시집보낸 것은 고구려를 정복하려는 것이었구나!'
  낙랑공주는 자신의 처지가 슬펐다.
  '사랑하는 남편의 뜻을 따를 것인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단 말인가?'
  호동왕자의 간곡한 부탁을 듣고온 공주였지만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공주는 밤중에 몰래 일어나 북과 뿔피리를 파괴해 버렸다.
  이것은 즉시 호동왕자에게 전해졌고 고구려는 전세를 가다듬어 낙랑을 침범하였다.
  바로 앞에서 들리는 고구려군의 함성 소리를 듣고 최리왕은 깜짝 놀랐다.
  "북과 뿔피리가 울리지 않다니!"
  놀라서 뛰어가보니 북과 뿔피리가 망가져 있었다.
  '그렇다면 공주가?'
  화가 난 낙랑왕은 공주를 찾아 죽이고 말았다.
  곧 이어 낙랑궁으로 들어온 호동왕자는 공주를 찾았으나 이미 죽고 난 뒤였다.
  호동왕자는 공주의 시체를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미안하오. 공주는 나의 나라를 더 사랑했구려."
  고구려군은 싸움에서 이겨 축제 분위기였다.
  나라를 위해서 큰 공을 세운 호동왕자에 대한 칭찬이 고구려 안에 자자해졌다.
그러자 대무신왕의 왕후는 호동왕자가 자기가 낳은 아들의 자리를 가로채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왕후는 호동이 자신을 간음하려 한다고 말하고 또 왕위를 넘본다고
왕에게 참소하였다. 왕은 처음에는 믿지 않았으나 울면서 호소하는 왕후의 소리를
여러 번 듣자 마음이 움직였다. 그런 마음으로 호동왕자를 보니 자기를 볼 때
얼굴빛이 어두워 보이는 것이 점점 의심스러워졌다.
  낙랑공주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않은 상태에서 왕후의 모함은 견디기
어려웠다. 또한 왕의 싸늘한 눈초리는 호동왕자를 더 슬프게 했다.
  호동왕자를 안타까이 여긴 신하가 호동에게 말했다.
  "왕자님, 왜 왕 앞에 나가 사실대로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내가 만약 사실대로 아뢰면 어머니가 거짓말한 것이 되지 않겠소. 그로 인해
아버님이 걱정을 하실 텐데 어찌 자식된 도리로 그럴 수 있단 말이오."
  그해 11우 고구려에서 공주를 장사지내기로 한 날이 되었다. 호동왕자는 마음이
너무 울적하였다. 여전히 호동왕자에 대한 모략이 그치지 않고 돌고 있었다.
호동왕자는 살고 싶은 욕구가 없어졌다.
  호동왕자는 사랑하는 공주의 뒤를 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