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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낚시꾼을 ‘강태공’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낚시꾼을 ‘강태공’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원전 1600년에 등장한 은(殷)나라는 500여 년 동안 중국 고대 문명의 중심으로 번영을 누렸다.

그러다가 기원전 1046년에 이르면 은나라의 제후국이던 주(周)나라가 종주국인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의 패자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때 주나라의 문왕(文王)을 도와 은나라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강태공이었다.

 

강태공은 천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왕은 내쫓고  새로이 왕을 내세워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은 주지육림(酒池肉林:연못은 술로 채워놓고 나무에 고기를 걸어놓아 술자리를 마련했다는 주왕의 고사에서 나온 말로 호사스런 술잔치를 빗대어 이름)에 빠져 나라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을 알아줄 사람이 올 때를 기다리며 낚시질을 해 낚시꾼의 대명사가 된 강태공.

그는 자신을 알아준 주나라 문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새 왕조를 세웠다.   

 

천자가 천명을 버리면 천명으로 그를 바꾼다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 중국의 위수(渭水)강변에서

한 칠순 노인이 한가로이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강여상이라는 이름의 이 노인은 벌써 수십 년째 이곳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지만

 딱히 월척을 낚겠다는 욕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날도 그는 낚시 바늘을 곧게 편 채 물 속에 던져 넣고는 그저 덧없는 세월만 낚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런 어느 순간,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잔잔하던 물결이 세차게 흔들렸다.

갈대숲이 스산하게 몸을 떠는가 싶더니 서쪽의 실력자로 떠오르고 있던

주나라 왕 희창이 군사들을 이끌고 강 노인 앞에 나타났다.

 

 

 “오늘 위수에 오면 용도 아니고 대어도 아니고

 

우리 주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을 사람을 낚을거라는 점복(占卜)이 있더니 그대인가 보오."

 

 

희창이 이렇게 말하자, 노인은 순순히 낚싯대를 거두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노인 역시 오랜 세월 때를 기다리며 이 강가에서 낚시질로 소일해왔기 때문이다.

 

 

 

희창이 다시 말했다.

 

“우리 아버지이신 태공(太公)께서 항상 이르시기를

 

당신 같은 인재가 나타나 우리를 도울 거라고 했소.

 

태공께서 바라던[望] 인물인 만큼 이제부터 그대를 태공망(太公望)이라 부르겠소.”

 

 

희창은 주나라의 문왕으로 받들어졌고,

칠순의 낚시꾼은 태공망 또는 강태공으로 불리면서 문왕을 도와 주나라의 성장을 이끌었다. 

 

그 당시 중국은 주왕이 다스리는 은나라 천하였다. 한때 황하 일대를 평정하고 중국을 호령하던

은나라였지만, 주왕이 나라 일을 소홀히 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국세가 기울고 있었다.

은나라 치하의 각 지방이나 이 나라에 공물을 바치던 주변의 제후국들이

서서히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점차 그 중심에 우뚝 서기 시작한 나라가 서쪽에서 세력을 키워온 주나라였다. 

 

 

문왕은 중원 진출의 꿈을 못 다 이루고 죽었지만, 강태공은 노구(老軀: 나이 먹어 늙은 몸)를 이끌고

문왕의 아들인 武王을 계속 보필했다. 사치와 방탕을 일삼으며 백성을 보살피지 않는 은나라 주왕을

바라보면서 강태공의 신념은 강철같이 단단해졌다.

 

"천명(天命)을 받아 왕위에 오른 천자(天子)가 제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천하를 올바로 다스리지 못하면, 이것은 천명이 다한 것이다. 반드시 그 자리에서 내쫓고

 

새로이 천명을 받은 자를 보위에 올려야 할 것이다. "

 

은나라가 강성했을 때는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었을 이 무서운 혁명론은

중원의 대국 은나라에 맞서는 소국 주나라의 강력한 이론적 무기였다.

강태공은 이 같은 혁명이 멀지 않았다는 판단 아래 예리한 눈으로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왕은 점을 담당하는 태사(太史)에게 거북점을 치게 했다.

거북껍질을 불에 태워 점을 쳐본 태사는 점괘가 좋지 않으니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거북의 등 껍질을 불에 달구어 그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점을 친 후 

점괘의 내용을 거북 등에 함께 그림 문자로 표시한 갑골 문자

 

 

 

그때 형세를 지켜보고 있던 강태공이 앞으로 나서

불에 탄 거북 껍질을 발로 밟아 짓이기며 소리질렀다. 

 

"사람의 일에 그까짓 뼈다귀와 재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입니까?

 

지금이야말로 천하를 바로잡을 절호의 기회이니 신을 따르소서!"

 

 

당시로서는 인간이 점괘에 도전하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강태공을 굳게 믿고 따르던 무왕은 망설이는 신하들을 추슬러 군사를 일으켰다. 

수만 명의 병사가 여든 노구의 강태공을 뒤따르니, 중국 각지에서 제후들이 들고 일어나 

그 주위에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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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응천 지음, <청소년을 위한 라이벌 세계사> 중에서...